개교77주년 기념 야외 설치전 <진리의 빛, 예술로 환히 밝히다>

2023년 10월 11일 - 2023년 11월 26일
서울대학교미술관 야외 광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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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 미하일에게 하느님이 사람에 대해 세 문제를 내고 답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것들 가운데 마지막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미하일은 답을 찾기 위해 두 번째 질문 곧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에 대해 먼저 알아야 했다. 그리고 부유한 신사의 죽음으로 인해 그것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에 대한 지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에 참으로 필요한 것을 모르기에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채 살고, 지혜의 부재를 다른 무언가로 채우는 것을 통해서만 살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 미하일이 찾은 답은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것, 타인을 돕고 타인으로부터 도움받는 것이다. 하느님은 옳은 답을 찾은 미하일을 다시 하늘로 불러 올렸다.
 바로 옆 미술관 안에서는 <자아 아래 기억, 자아 위 꿈> 전이 열린다. 역시 결핍된 인간,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과거에 연연하는 존재다. 알지 못하는 해방을 상상하고, 가능하지 않은 탈주를 기획하고, 갈 수 없는 나라를 그리워한다. 결핍되고 균열이 간 존재이기에 그렇다. 현실적이려 하면 할수록 비현실적이고, 효율을 추구할 때 가장 비효율적이 되는 존재다. 이 부재는 타인을 발견하고, 타인의 고통에 눈뜨고, 타인을 사랑할 때 비로소 살 수 있을 만큼 보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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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접근이 요구된다. 지식도 인간의 일이고, 게다가 자신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아는 지혜의 결핍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국으로 내모는 무모한 질주로 끝나곤 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자신의 길을 충분히 밝힐 수 없기에, 자신의 무지를 비춰주는 다른 빛의 공급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지식도 타인에 눈뜨고, 타인의 지식으로 도움을 받을 때 생기가 돌고 밝은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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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주의적 지식하기가 만연한 시대다. 아르키메데스와 디오게네스가 함께 있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역사학과 천문학의 사이는 아마득하게 멀어졌다.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의 집게손가락과 땅을 암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은 앙숙이 되었다. 시몬 베이유(Simon Weil)의 표현을 빌자면 "육체와 영혼 사이의 진정한 약속이 깨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철학, 신학, 법, 예술 모두가 한자리에 있다. 이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두 기둥에 걸쳐진 아치 아래, 시간을 가로지르고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 속에서는 서로 마주할 수 없었던 54명의 철학자가 함께한다. 철학과 신학, 역사학과 천문학의 격의 없는 토론 사이에, 라파엘로는 예술을 배치한다. 동반자로서의 예술이고 교감하는 예술이다.
 거장의 벽화가 전통적인 프레스코 벽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작업하는 선우항 작가에 의해 이곳 관악 캠퍼스에 재현되었다. 그 웅장함이, 그 교류와 융합의 정신이, 사랑의 지혜가, 상서로운 기운이 이 지식의 전당에 널리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선우항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